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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빈목도 작성일24-02-15 19:01 조회9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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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는 늦은 오후 자신의 침실 테라스로 나와 저 멀리 보이는 청록색 바다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걸 즐겼다.

탄야 롤토토사이트 아클라토 섬으로 이주해 온 지도 어느덧 7년.

그 세월 동안 공국이던 섬은 왕국이 되었고, 헤토르와 멜라니 사이에 쌍둥이 남매와 셋째가 태어났다.

대륙에 비하면 부족한 게 많았지만, 왕비로서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풍족했다.

무엇보다 넘치도록 받는 남편의 사랑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오늘도 편안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집무실로 가서 깜짝 방문이나 하고 올까?”

어차피 밤이 되면 침실에서 만날 사이임에도 두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의 얼굴을 보고 포옹하고, 입을 맞춰야 했다.


“생각난 김에 지금 다녀와야겠다.”

멜라니는 찻잔을 내려놓고, 헤토르에게 갈 준비를 했다.

그때, https://xn--bp2bm5m2xftlla69n.com/소리와 함께 시종이 들어왔다.


“왕비님, 글로인 백작 부인께서 오셨습니다.”

“그래? 어서 모시거라.”

멜라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왕비님.”

“한 달 만이에요. 어서 와요. 율리나.”

글로인 백작 부인은 바로 아클라토 공국 출신으로 라피온 제국의 후궁이었던 율리나였다.

젤다가 다시 황후의 자리로 복위한 후, 아클라토 공국 출신의 후궁들은 리넬 황제의 명으로 다시 아클라토 섬으로 돌아왔다.

세 후궁은 황제와는 말도 제대로 섞어 본 적 없는, 남보다도 못한 관계였으니 미련 없이 라피온 황실을 떠나왔다.

본디 아클라토 공국의 귀족 가문 여식들이라 어렵지 않게 다들 재혼에 성공했다. 현재 그녀들은 행복한 귀부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게다가 헤토르는 기존 공국의 귀족들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배려해 자연스럽게 왕실의 일원으로 스며들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라피온 황실에서 가장 앙숙이었던 멜라니와 율리나는 아클라토 섬에서 다시 재회한 이후, 이곳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율리나가 먼저 살갑게 다가왔다. 아는 이가 전혀 없는 이곳 생활에 멜라니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줬다.

공국의 귀족들 상당수가 왕실의 주요 관직에 올랐기 때문에 율리나는 멜라니에게 아클라토 공국 출신의 귀족들 사이에서 그녀가 왕비로서의 위엄을 세울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율라나의 남편인 글로인 백작 또한 아클라토 왕실의 주요 대신 중 한 사람이라 왕실의 내부 소식에 능통했는데, 그녀가 오늘 멜라니를 찾아온 이유도 제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왕비님. 혹시 그 얘기 들으셨어요?”

“무슨 얘기요?”

“탄야 섬의 왕실을 끝까지 지킨 궁인들이 돌아온다면서요?”

“네,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도착한다고 들었어요.”

“그들 중에서 왕비님의 시녀가 될 궁인이 있다는 소식은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누가요?”

“아직 못 들으셨군요.”

율리나의 예상대로였다.

잠시 망설이던 율리나가 목소리에 힘을 주며 어떤 이름을 언급했다.


“에쉬…… 라는 궁인이라던데요?”

“아하, 에쉬가 제 시녀가 됐다고요?”

“아시는 여인이에요?”

“네. 탄야 섬에 머무를 적에 왕실에서 몇 번 봤었죠. 그곳 안살림을 총괄했던 궁인이에요.”

“시녀장 같은 역할을 했나 봐요?”

“뭐, 비슷해요.”

에쉬는 탄야 섬에서 멜라니가 왕비로서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해 주곤 했었다.

탄야 섬에서 큰 지진이 난 이후, 대부분 아클라토 섬으로 이주해 왔다.

3년 안에 가라앉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탄야 섬은 지진 이후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자진해서 탄야 섬에 남아 석류 등 주요 작물들의 재배와 생산을 주도해온 궁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지진이 자주 일어나게 되자, 헤토르의 명으로 모두 이곳 아클라토 섬으로 이주하게 됐다.

그들은 먼저 떠나온 탄야 섬의 국민에게 애국자라는 칭호를 얻고, 존경받았다.

헤토르가 그들에게 왕실의 주요 관직을 내릴 거라는 소문도 이미 한 달 전부터 돌았다.

당연한 처우였다.

그들 중 한 명이 바로 ‘에쉬’다.


“에쉬가 제 시녀가 되면 여러 가지로 더 편해지겠네요.”

“그런데, 그 궁인이 대왕과 왕비님 두 분을 모두 담당한다던데요?”

“우리 둘을요? 왜요? 괜히 일만 많아져서 힘들 텐데?”

멜라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저야 모르죠. 저도 그게 좀 이상해서 그 얘길 듣자마자 찾아뵌 거예요.”

율리나는 그 궁인을 경계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국무 회의 때 누군가 건의했나 보더라고요. 대왕께서도 이미 승인하신 내용이고요.”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멜라니는 세상 근심 없는 얼굴로 싱긋 웃었다.


“귀족도 아닌데, 시녀를 맡기는 게 괜찮을까요? 전 그게 좀 염려스러워서요. 노예 출신은 아니죠?”

답답한 율리나가 슬쩍 떠보듯 물었다.


“네, 그건 아니에요. 원래는 목욕 시종이었대요. 에쉬가 워낙 일을 잘하고, 똑똑해서 왕실 업무를 하는 궁인으로 신분이 상승했다고 들었어요.”

“저기 확실한 건 아니지만요, 시종에서 신분이 상승한 이유가…….”

율리나가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어가는데, 침실 문이 열었다.


“어? 오후 내내 시간이 안 날 거라더니, 웬일이세요?”

“잠깐 시간이 남아서. 손님이 와 계셨군.”

헤토르였다.


“대왕을 뵈옵니다.”

율리나가 허겁지겁 의자에서 일어섰다.


“왕비님, 저는 며칠 후에 다시 찾아뵐게요.”

“벌써 가려고요?”

“어차피 잠시 들른 거라 가봐야 해요.”

“그래요, 조만간 다시 와요.”

“네에, 그럼 다시 찾아뵐게요.”

율리나는 두 사람에게 예를 갖춘 뒤, 서둘러 침실을 나갔다.


“백작 부인과 무슨 얘기 중이었어?”

헤토르가 침실 문을 힐끔 돌아보며 물었다.


“에쉬. 그녀가 우리 부부의 시녀가 됐다면서?”

“아, 그래. 얘기한다는 게 깜빡했네.”

“그런데 우리 둘을 동시에 맡는 건 좀 벅차지 않을까?”

멜라니는 에쉬를 걱정하며 그에게 물었다.


“본인이 원한다는데 뭐. 그렇지 않아도 무리하지 말라고 했어.”

“충신이네. 탄야 섬이 가라앉기 직전까지 그곳 왕궁에 남아 있다가, 여기 와서도 곧바로 왕실 일을 하려고 하고.”

“그렇지 않아도 아클라토에선 편히 살라고 했지. 그런데 굳이 왕궁으로 들어와 살겠다네.”

“당신을 굉장히 좋아하나 봐?”

멜라니가 웃으며 헤토르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럽게 쓸어 올렸다.


“에쉬는 워낙에 일 중독이라 그래.”

“나야 고맙지 뭐. 근데, 요즘 글은 잘 써져?”

“새로운 소재가 떠올라서 리넬 폐하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모이야랑 모니가 오면 편지를 보낼 생각이야.”

“나도 말해줘. 대충 무슨 내용인데?”

“부인 몰래 집안의 하녀랑 사랑에 빠지는 내용.”

“그건 사랑이 아니라 불륜이잖아.”

멜라니가 코를 찡끗했다.


“이를테면 그렇다는 거지. 배신당한 여주인공이 복수하는 내용인데, 아직 거기까지 밖에 생각하지 못했어.”

“리넬 폐하께서 재밌어하실까? 무조건 폐하의 취향에 맞게 써야 해.”

아직 라피온 황실과 사돈을 맺겠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 멜라니가 헤토르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당부했다.


“사실 그분은 취향이랄 건 없어. 야하면 다 좋아하시지.”

“쉽네, 그럼. 과감하게 써. 알았지?”

“그러려면 경험이 좀 필요한데…….”

헤토르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제 무릎에 앉혔다.


“폐하는 아실까? 소설 속 야한 장면은 우리의 경험에서 우러나온다는 걸.”

헤토르의 말에 멜라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실걸? 내가 황후 폐하께 하도 자랑해서 아마 폐하께도 말씀드렸을 거야.”

“어떻게 말씀드렸는데?”

헤토르는 그녀를 번쩍 들어 침대로 걸어가며 물었다.


“닿기 전엔 거칠고 무뚝뚝한 남자지만, 이렇게 가까이 닿으면 부드럽고 다정해진다고.”

“믿으셔?”

헤토르는 멜라니가 자신에 대해 내린 평가를 이행하듯 그녀의 목덜미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물었다.


“모르지 뭐. 아잇, 거긴 너무 간지럽잖아!”

멜라니는 가녀린 어깨를 움찔하며 헤토르의 품 안에서 바스락거렸다.

그런 멜라니의 몸짓이 귀여워 미치겠다는 듯 헤토르의 몸짓이 빨라졌다.


“불, 불 좀 꺼. 부끄러워.”

“걱정 마. 아무것도 안 보여. 내 이성은 진즉 꺼졌거든.”

“그래도 난 아직 이성이 붙어 있어서 창피하단 말이야.”

“이래도? 응? 이래도 말이지?”

헤토르가 멜라니의 약한 부분을 공략하자 멜라니가 온몸을 비틀며 숨이 넘어갈 듯 깔깔거렸다.

***



“잠시 후에 다시 오셔야겠어요, 에쉬 님…….”

침실 밖에서 대기 중인 탄야 섬 출신의 시종이 민망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야겠지? 빨리 만나 뵙고 싶은 마음에 미리 알현을 청하지 않고 온 내 실수야.”

에쉬는 침실 밖에서 새어 나오는 멜라니의 교태 섞인 웃음소리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돌아섰다.

대체 대왕께서 뭘 어쩌시기에 저런 교태 섞인 웃음을 흘리는 걸까.

호기심과 질투가 뒤엉켜 마음이 복잡했다.

애초에 탄야 섬에 남았던 것도 헤토르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서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점점 가라앉는 섬에 남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혹시나 헤로르를 향한 제 마음도 탄야 섬처럼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 고집스레 섬에 남았지만, 7년이 흘러도 에쉬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탄야 섬의 절반이 물에 잠기고 나서야 새로이 터전을 잡은 아클라토 섬에 발을 들였다.

그리움만 더 짊어진 채 돌아온 꼴이었다.

왕궁에 도착하자마자 헤토르를 찾아갔지만, 그는 왕비의 처소에 갔다고 했다.

두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인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찾아왔는데, 첫날부터 낭패다.

에쉬는 발길을 돌려 왕실 곳곳 둘러봤다.

다행히 탄야 섬의 왕실에서 친하게 지냈던 궁인들 대부분이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

다들 에쉬에게 인사를 건네며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에쉬는 왕궁을 돌며 개선할 것들을 수첩에 적어 나갔다.


“하여간 왕실엔 내가 있어야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식기류를 살핀 다음, 기존 왕실에서 썼던 스타일로 모두 바꾸도록 지시했다.

당장 오늘 저녁에 나오게 될 메뉴도 예전에 헤토르가 좋아하는 것들로 변경했다.

어느 부서든 에쉬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탄야 섬의 왕실에 있던 시종들은 에쉬를 마치 안주인 대하듯 하며 그녀의 명령을 기꺼이 따랐다.

***

저녁 식사 전, 멜라니는 욕실로 향했다.

헤토르가 온몸 곳곳에 남긴 사랑의 흔적들 때문에 가벼운 목욕을 해야 했다.

욕조에 몸을 담그려는데, 시종이 욕실 안으로 들어왔다.


“왕비님, 탄야 섬에서 오신 에쉬 님께서 만나 뵙기를 청하십니다. 어찌할까요?”

“아, 에쉬가 왕국에 도착했어? 지금 여기에 왔다고?”

“예에. 몇 시간 전에 도착하셨답니다.”

“침실로 들여보네.”

멜라니는 다시 가운을 챙겨 입고, 침실로 나왔다.


“왕비님을 뵈옵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어서 와. 우리, 7년 만인가?”

멜라니가 에쉬에게 가벼운 포옹을 하며 미소 지었다.


“그렇죠. 대왕께선 1년에 한 번씩 탄야 섬을 방문하셔서 뵀지만, 왕비님과는 7년 전 탄야 섬에서 마지막으로 뵙고 처음입니다.”

“그대의 안부는 늘 들었어. 탄야 섬에 다녀오시면 항상 칭찬하시더라고.”

사실 헤토르에게 에쉬의 칭찬을 항상 들은 건 아니었다.

7년 동안 한두 번 들었나? 그것도 다른 궁인들 칭찬과 함께였다.

그러나 멜라니는 오랜만에 만난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어서 살짝 거짓말을 보탰다.


“과찬이십니다. 목욕하시려던 중이셨나 봅니다.”

잠시 미소를 띠던 에쉬가 멜라니의 차림을 보고 물었다.


“응. 가볍게 하려던 참이야. 탄야 섬의 온천욕이 그리워. 한 번 목욕하고 나면 살이 부들부들 해졌었는데, 피로도 풀리고.”

“예에, 대왕께서도 온천욕을 참 즐기셨지요.”

“그러고 보니 에쉬는 7년 전보다 더 예뻐졌네. 항상 온천욕을 해서 그런가?”

이번에 건넨 말은 사실이었다.

에쉬의 얼굴은 팽팽하고 광이 났으며 피부까지 구릿빛이라 더 탐스러워 보였다.

한 마디로 건강미가 넘쳤다. 육감적인 몸매도 더 도드라져 보였다.


“제가 시중을 들까요?”

“내 목욕 시중을?”

멜라니가 놀란 투로 물었다.


“네. 모르긴 몰라도 제 솜씨가 시종들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제가 원래 목욕 시종이었던 건 알고 계시죠?”

“아, 전에 들은 적 있어. 그래도 이제 에쉬는 시녀잖아.”

“괘념치 마세요. 대왕께서도 인정하신 실력입니다. 왕비님께서도 제 손길에 만족하실 거예요.”

에쉬가 나긋한 목소리 묘한 말을 흘렸다.


“대왕께서 뭘 인정하셨는데?”

멜라니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모르셨어요? 대왕께서 아클라토 공국을 차지하기 위해 출정을 떠나시기 전까지, 제가 항상 목욕 시중을 들었거든요.”

“……목욕 시중을 직접?!”

“아, 이런. 모르셨군요.”

에쉬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고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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